경향신문 제 목 : 악당인가, 철부지인가 ‘재앙을 낳는’크래커 ---------------------------------------------------------------------------- 야후 등 거대 사이트들에 대한 연쇄 해킹사건 이후 인터넷상의 정보보안 문제가 전세계 주요 기업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해킹은 한 사 이트의 파괴에 그치지 않고 주식시장 등에까지 큰 영향을 미쳐 엄청난 경제 적 피해를 입히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공개 해킹 프로그램의 확산으로 철부지들까지 해킹에 가세하는 지경이 됐다. 인터넷에 접속해 ‘해킹(hacking)’을 입력하면 수많은 해킹 관련 사이 트들이 뜬다. 여기에는 지난해 7월 해킹그룹이 공개한 해킹 프로그램 ‘백 오리피스 2000’ 등 누구나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해킹 툴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제 해킹은 무차별적으로 일어날 개연성을 갖게 됐다. ‘해커’는 88년 로버트 모리스가 해킹 프로그램 ‘인터넷 벌레’를 발 표한 이후 보편화된 말. 원래는 인터넷 상업주의와 정보독점에 반대해 암호 체계를 해독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을 지칭했다. 일부 컴도사들을 중심으로 활약하다 90년대 들어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인터넷 초보자들도 마음만 먹 으면 클릭 몇번으로 해킹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해킹 고수’ 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실행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킹 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백오리피스 정도의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킹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아마추어 해커다. 이들은 자신이 해킹 사이트를 어떻게 뚫고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채 해킹을 한다. 또한 얼마만큼 피해를 입혔는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간단한 손놀림 하나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지고 떠들썩해지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사고를 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세 상을 조롱하며 사람들을 더욱 깜짝 놀라게 해줄 또다른 해킹을 꿈꾼다. 조 금만 용의주도하면 결코 탄로나지 않는 게 해킹의 세계이기에. 이런 ‘아마추어 해커’들이 이른바 ‘스크립트 키디들(Script Kiddies) ’이다. 해킹문서에 있는 설명대로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쉽게 해킹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네티즌들은 누구나 한번쯤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보안전문가 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해킹 사고는 대부분 이들 ‘철없는 해커’들 이 저지른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해킹사고들도 외국의 스크립 트 키디들의 ‘소행’이 많다. 해커스랩(hackerslab.org) 명예의 전당 1호 에 오른 보안전문가 오태호씨(‘4DL’ 근무·22)는 해커를 추적하기 위해 해커들이 즐겨찾는 채팅방에 들어가면 외국의 스크립트 키디들과 자주 마주 친다고 한다. “스크립트 키디는 감옥에 갔다오는 것을 마치 ‘훈장’처럼 여깁니다. 고수들은 대부분 해킹을 할 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나오지만 이들은 일부러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자신의 해킹 실력을 뽐내면서 세상을 놀라게 해 주목을 받으려는 ‘소영웅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이죠. 이들은 유명해지고 싶어 해킹을 하는 까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삼는 경우 가 많습니다” 한번 해킹에 재미를 들인 스크립트 키디들은 신용카드를 훔치는 등 점점 상습 ‘범죄자’가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이들을 해커 대신 ‘크래커’라고 부른다. 크래커는 그야말로 나쁜 목적으로 해킹을 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다. 반면 ‘프로 해커’들은 새로운 해킹 기술을 개발하고 시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요즘 음지보다 양지에서 활동한 다. 크래커들의 불법적인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컴퓨터 보안전문 사이트를 운영하거나 기업·정부부처·단체 등에 특채된 보안전문가들. 이들은 해킹 방어기술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험하고 이를 통해 보안기술을 보완해 주기 위해 필요할 때만 ‘건전한’ 해킹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수급 해커들 중에서도 더러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추적하기 어려운’ 해킹 솜씨를 뽐내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새로운 해킹 보안기술이 나와도 이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이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을 내놓는다. 겹겹 의 보안망을 뚫고 내부 컴퓨터망까지 들어가 보란 듯이 농락한다. 지난해 8 월 보안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시맨텍’사가 해킹을 당한 사건이 그런 경우다. 해킹 고수들은 90년대 이후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미국의 전설적 해커 케빈 미트닉은 지난 92년부터 선 마이크로시스템과 모 토롤라 등 세계적인 기업의 컴퓨터망에 침입해 각종 자료를 훔쳐내다 95년 덜미가 잡혀 구속됐다. 그는 4년11개월을 복역하고 최근 ‘컴퓨터와 인터넷 이 가능한 전자제품에 대한 접근 금지 및 관련기업에 대한 기술적 조언 제 공 금지’를 조건으로 풀려났다. 고수급 해커와 철없는 해커들 사이에 ‘정치적 해커’들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주장이나 의사, 견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해킹을 하는 사람들이다 . 이러한 해킹을 ‘핵티비즘’(해킹과 액티비즘의 합성어)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유고전 때 미국과 서방의 웹사이트를 공격한 유고의 해커들처럼 사 이버전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 해킹한 홈페이지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거나 데이터를 흔적없이 지워버리는 일도 서 슴지 않는다. 올 초 일본 우익단체들이 난징대학살을 부인하자 중국 해커들은 일본 정 부의 홈페이지에 연쇄적으로 침입해 국세자료 등 각종 통계자료를 삭제하고 접속경로를 차단했다. 일본국명을 브라질로 바꾸고 비난문을 싣는 등 ‘분 노의 해킹’이 이어졌다. 야후 사이트는 지난 97년 말에도 해킹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해커들은 케빈 미트닉을 석방하라는 주장을 폈다. 해커들은 10대 해커들의 우상으로 추종자를 거느리기도 한다. 악당 해커와 건전한 해커인 보안전문가들의 치열한 두뇌싸움터이기도 한 인터넷. 보안전문가가 신기술을 내놓으면 이에 뒤질세라 해커들 또한 이를 따돌리는 신기술로 대응한다. ‘뛰는 보안전문가 위에 나는 해커’가 있는 것. 또한 요즘의 해킹은 컴퓨터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해 킹의 유혹에 빠지고 장난삼아 한 클릭이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해 킹의 전성시대. 네티즌들의 ‘인터넷 도덕 재무장’이 필요한 때다. /최효찬기자 romachoi@kyunghyang.com/ 발행일 2000년 03월 16일 ----------------------------------------------------------------------------